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가이 포크스 (문단 편집) == 혁명과 저항의 상징 == [[아나키즘]], [[사회주의]] 등의 사상을 주장하는 일부 사회운동가는 가이 포크스를 혁명과 저항의 상징으로 삼기도 하지만 실제로 가이 포크스는 정부의 압제를 지지하는 극단주의자로[* 즉, 가톨릭을 국교로 하는 정부를 세워서 성공회를 위시한 개신교에게 압제를 가하겠다는 말.], 가톨릭 [[근본주의]]자였다. 포크스 본인부터가 그랬고[* 포크스는 [[네덜란드 독립전쟁|스페인과 네덜란드 간의 전쟁]]에 참전한 적이 있다. 물론 독립을 원하는 네덜란드 쪽에서 싸운 것이 아니라 [[스페인 제국]]군의 일원으로 싸웠다.], 의회 폭발 공모자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음모에 가담한 사람 역시 부당한 권력의 투쟁이라는 개념보다는 본인이 갖고 있던 신분적 신앙적 기득권의 상실을 막기 위한 목적이었다.] 교파 간에 첨예하게 대립하고 반목하던 당시에 제임스 1세와 국교회[* 현재 성공회의 전신(前身)을 말하는 것이다.]가 꾀했던 공존과 관용을 정면으로 거부하고, 가톨릭에 의한 압제를 부르짖던 자들을 현재의 우리는 자유와 해방의 투사로 알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가톨릭 [[극단주의]] 무장 단체로써 개신교, 성공회는 물론이고 가톨릭 내 온건파까지도 적으로 돌린 테러 단체였다. 가이 포크스 일당이 원했던 것은 현 정부를 전복하고 당시 9세였던 [[엘리자베스 스튜어트|엘리자베스 공주]]를[* [[제임스 1세]]의 장녀이자 [[조지 1세]]의 외할머니.] 괴뢰 국왕으로 옹립시킨 뒤, 가톨릭 국가인 스페인 제국의 힘을 빌려 자신들이 실권을 장악하여 잉글랜드를 엄격한 가톨릭 종교국가로 변모시키는 것이었다. 한마디로 정치=종교를 지향하는 [[근본주의자]]들이자, 집권을 위해 테러를 기도한 [[테러리스트]]였던 것. 만약 가톨릭 극단주의자였던 가이 포크스가 이 테러를 성공시켜 정권을 잡았었다면, 잉글랜드는 당시 유럽 대륙을 피로 물들인 [[성 바르톨로메오 축일의 학살]]이나 [[30년 전쟁]]같은 끔찍한 종교 갈등을 겪을 수도 있었다. 그래서 왠만한 영국 가톨릭 신자들도 극단주의적 성향을 지니지 않은 이상 가이 포크스를 본받자는 말 같은건 하지 않는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가이 포크스가 [[가톨릭]]을 위해 왕(제임스 1세)을 암살하려다가 실패한 테러리스트라는 사실은 잊혀지고, 단지 정부에 대항해 싸웠다는 이미지만 기억되어, [[잉글랜드]]에게 감정이 있던 [[스코틀랜드인]]/[[미국인]]/[[프랑스인]]에게는 자유와 혁명을 상징하는 인물로 와전되기에 이른다. 물론 본국인 잉글랜드에서는 오랫동안 정신줄 놓은 반역자로 취급됐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영국 특히 잉글랜드에서도 권력에 대항한 자라는 이미지가 심어졌다. 예로 유명 보수주의 블로거 Guido Fawkes(기도 포크스)[* 매우 유명하고 영향력있는 블로그다. 정치인도 한 번씩은 언급을 하고, 전 수상인 [[데이비드 캐머런]]이 직접 기도 포크스 블로그 10주년 축하 동영상을 보내기도 했다.]는 이 사람의 본명인 Guido Fawkes에서 그대로 따왔다. [[파일:attachment/가이 포크스 가면/gf_mask1.jpg|width=50%]] 영국에서는 가이 포크스의 사후 북아일랜드 지방을 제외한 지역에서 가이 포크스의 테러를 막은 것을 기념하기 위한 행사가 벌어지고 그의 얼굴을 본딴 가면이 퍼져나갔다. 자세한 건 [[가이 포크스 데이]][* 심지어 가이 포크스 데이는 가이 포크스를 기념하는 날이 아니라 가이 포크스의 테러가 무산된 것을 기념하는 행사이다.] / [[가이 포크스 가면]]을 참조. 영어에서 그 녀석 또는 그 사람을 뜻하는 단어 Guy는 가이 포크스의 이름에서 생겨났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가이 포크스 데이에 불태우는 커다란 인형을 "Guy"라고 부른 것이 먼저고, 거기서 남성을 불특정적으로 지칭하는 단어인 "guy"가 생겨났다고. 한편 이 암살 기도 사건이 벌어진 이후 제임스 1세는 당연히 의사당의 경비를 강화해서 의회 개회식 때 국왕이 참석하기 전 의사당 지하를 근위병이 샅샅이 수색하는 작업을 정기적으로 행하게 했다. 이게 후대에는 하나의 의식으로 남게 되어서 [[영국 의회]] 개회식 때 왕실 근위대 병사가 의회 지하실을 수색하는 행사를 치른다. 물론 실질적인 의회 경비는 영국 정부에서 따로 행하므로 이 수색은 어디까지나 형식적으로 둘러보는 수준이다. [[분류:1570년 출생]][[분류:1606년 사망]][[분류:요크 출신 인물]][[분류:영국의 가톨릭 신자]][[분류:교수형된 인물]][[분류:참수된 인물]][[분류:능지형된 인물]][[분류:테러리즘]][[분류:시위의 상징]]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